왜 3정당은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할까 - 한국 정치의 3정당 그리고 일본 정당과의 비교 -
왜 3정당은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할까? 현재 한국 정치에 3정당은 사라졌다. 과거 국민의당의 녹색 돌풍이 불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분당이 되고 기성 정당과 통합되고 존재하여도 소수 정당으로 바뀌었다.
제3정당이란 기성 양당 정치를 탈피한 정당이다. 한국 정치에서 몇 차례 3정당이 출현했다, 사라졌다. 이 부분을 내적인 이유와 외적인 이유로 살펴보려 한다. 또한 지금은 사라진 바른미래당과 일본의 일본유신회, 공명당과의 비교를 통해 3정당이 가야 할 길을 알아보자.
왜 3정당은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할까?
내적인 이유를 먼저 보자. 바른미래당 당원들 중에는 더불어민주당에 가까운 성향도 있고, 자유한국당에 가까운 성향의 당원들도 있다. 한국에서의 좌파 우파의 이념적 정체성은 경제와 안보 두 가지 측면의 노선과 가치관을 기준으로 나누는 경우가 많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의 경제공약을 보면 좌파적인 접근에 좀 더 강조되었다. 안보의 경우 자강안보를 강조하고 방산비리 근절, 첨단국방력 강화 등도 얘기하지만 남북대화 6자 회담 재개 등도 포함돼있다.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반대 당론을 정했다가 나중에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 결과 정책적 혼란이 자주 일어나 유권자들이 혼란을 느꼈다. 예를들어 안보 분야는 지지하는 데 경제분야는 지지하지 않는다거나.
3정당은 기존 좌우의 양당과는 확실하게 구별되는 정치적 노선을 가져야 한다. 바른미래당이 중립을 지키기 위해 좌도 우도 아닌 어중간한 길을 가자는 말이 아니다.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국가적 과제에서 해결책을 찾아가는 길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이 있듯이 좌우의 주장은 중요하다. 옳은 주장이라면 좌우의 이념을 따지면 안된다. 지금까지 이러한 길을 가지 않았기에 3정당이 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외적인 이유를 보자. 가장 큰 이유는 선거제도 문제다. 현재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소선거구제로서 조직력과 자금력에서 강한 거대 정당이 유리한 구조다. 그걸 막기 위해선 신생 정당 창당이 쉽고 다당제가 될수 있는 중선거구제와 연동형 비례대표 제로 개헌을 해야 된다. 중선거구제로 하면 신생 정당과 정치신인들이 의회에 진출하기 용이하다. 향후 총선에서 연동형 비례제도와 중선거구제를 전면 도입하면 20대 총선 기준으로 자유한국당 101석, 바른미래당 81석, 더불어민주당 77석, 정의당 22석으로 분포한다는 시뮬레이션이 발표된 바 있다. 결론적으로, 다당제로 가고 민심이 그대로 반영될수 있는 선거법이 바뀌어야 된다.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얻고서도 38석에 그쳤던 국민의당과 6석에 불과했던 정의당의 숨통이 트이는 결과가 예상된다. 특히 소수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수 있게 된다.
한국보다는 제3정당이 잘 자리잡은 일본정치에 대해 알아보자. 일본의 대표적인 제3정당이라면 일본 유신회와 공명당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유신회는 한때 소위 잘 나가는 정당이었지만 현재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 일본유신회는 일본의 극우 성향의 정당이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을 중심으로 2012년 9월 12일 창당을 선언했다. 이후 2014년 해산하고 여러 정당명으로 떠돌다 2016년 도로 일본유신회로 돌아왔다. 2012년 노다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면서 12월 16일에 46회 일본 중의원 총선거가 열리면서 지지율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국민들이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들은 자민당과 민주당이 어떻게든 장기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를 희생시켜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일본 국민들은 자민당도 아니고 민주당도 아닌 새로운 정당,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이 높아졌다. 이러한 가운데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쉽 그리고 과감한 행동력을 보여주는 즉 스트롱맨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에게 주목하기 시작한것이다.
일본유신회는 기득권 세력의 철밥통을 깨지 않는 이상 일본의 장래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유신 8 책을책을 통해 지방분권을 중심으로 하는 통치기구의 근본적인 개혁을 말했다. 이러한 결과 중의원 선거에서 54석을 확보하면서 자민당과 민주당의 뒤를 잇는 3정당이 되었다. 하지만 일본유신회의 승승장구는 오래가지 못했다. 하시모토 대표대행이 차기 수상 지명 선거에서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자 이시하라 당 대표가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1년 반간 내분이 진행되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오사카에서 당선된 일본유신회 소속 의원들이 선거법을 위반하면서 해당의원들이 제명되는 일도 발생한다.
총리로 선출된 아베 신조가 우경화 공약들을 사실상 철회하면서 일본유신회의 입지는 더더욱 좁아지게 되었다. 또한 하시모토의 위안부 망언이 크게 터지면서 일본 유신회의 지지율은 반토막이 났다. 그리고 계속된 망언과 지민당 공명당연대로 일본 정치권내 일본유신회의 가치는 거의 없어 졌다.현재는 중의원, 참의원 각각 11석을 보유하며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일본유신회 보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공명당은 어떻게 행동을 했는가. 공명당은 일본의 창각학회를 기반으로 하는 종교 색채가 강한 정당으로, 일종의 불교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정당이라고 볼수 있다. 정치적 노선으로만 보면 중도에 걸쳐있고 종교적 교리에 따라 약자 구호와 복지에도 관심이 많은 정당이다.
실제 필자는 지난 2월 공명당 소속 엔도마모루 도쿄도의원과 마루야마 전 오타구 의원, 수에야수 오타구 의원을 만난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공명당이 종교정당으로서 창가학회의 지지를 받아 성장한 정당이라고 생각을 많이 한다. 실로 필자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현실은 달랐다. 실제로 창각학회와 공명당의 직접적인 연관관계는 1970년부터 창가학회가 공명당 내에 창가학회 고위직을 파견하지 않고, 창가학회의 교리를 지우는 등 모션을 취했기 때문에 두드러지진 않는 편이다.
공명당은 자민당과의 연립정당이지만 뚜렷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며 존재감을 과시 했다.자민당보다는 보수색이 옅고 특히 한국에 우호적이다. 과거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해서 사죄를 표한적도 있다. 이러한 입장을 줄 곧 유지해서 자민당이 극우로 치닫는 것을 막는 중심 역할을 하였다. 자위대의 군 재편 및 평화헌법 폐기를 반대하고 있어 자민공명 연립정권에서도 극우 개헌의 최종 저지선을 지키고 있다. 물론 일본내에서도 창가학회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노골적으로 종교 정당이 아니고 정당의 노선이 뚜렷해서 오랫동안 3정당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공명당은 선거에 있어 엄청난 조직력을 가지고 있다. 상당수의 공명당 지지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선거날만 되면 적극 투표장에 가서 투표할 정도로 단합된 조직력을 자랑한다. 필자의 일본 지인중에 한분은 한국에 유학중인데도 단지 투표를 위해 일본으로 갔다가 온걸 본적이 있다. 또한 자신의 자택 일부를 양보해서 지방의회 의원 사무실로 사용하게 한것도 보았다. 이런 강력한 조직력이 제3정당으로 자리잡는데 큰 도움이 된걸로 보인다.
본론에서 알아본 내용들을 토대로 봤을때 한국의 3 정당은은 일본의 공명당을 롤모델로 삼아야 된다. 내적인 면에서는 뚜렷한 노선 설정과 실용적인 정책노선을 취해야 하며 기존 거대정당에 대해 실망한 국민들에게 집중해야 된다.
그리고 조직력을 강화시켜야 된다. 지방 곳곳에 지구당 조직과 당원교육을 강화시켜야 할 필요가 크다. 또한 일본유신회의 내부분열,망언으로 인한 몰락을 기억해야 한다.
외적인 면에서는 선거법 개혁이 꼭 필요하다. 제도적인 측면이 바뀌지 않으면 다당제와 3정당의 생존은 힘들다. 선거법 개혁으로 보다 나은 정치, 다당제의 길로 가야 된다.
바른미래당, 민생당은 사라졌다. 낮은 지지율과 후보 영입 문제, 당내 계파 공천 갈등등으로 새정치를 기대한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차기 선거에서 패할지라도 당내 개혁과 기존 거대정당과는 다른 정책 노선을 보여준다면 3정당으로 뿌리를 내릴수 있을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