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방콕) 수네타 호스텔 고양이들
나는 고양이보단 개를 좋아한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지도 않는다. 개처럼 살갑게 다가와서 꼬리를 흔들지도 않고 산책도 같이 못한다. 친해지긴 더 어렵다. 성격이 나쁜 고양이를 키우면 할퀴어서 피를 볼 수도 있다. 키운다기보다는 모신다는 느낌이다. 오죽했으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을 집사라 부르겠는가.
이랬던 생각이 방콕에 와서 바뀌었다. 내가 묵고 있는 수네타 호스텔엔 스코티쉬 폴드 고양이 4마리가 살고 있다. 체크인을 하러 들어가니 고양이가 마치 "이 자식 처음 오면서 츄르도 안 갖고 왔단 말이야? 센스가 없군"이라고 말하듯 째려봤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를 볼 때도 슬그머니 올라와 내 옆에 눕는다. 그리고 내가 쇼핑을 한 물건들을 하나씩 꼼꼼히 본다. 먹을 게 없다는 걸 확인하면 쌩하고 사라진다. 정말 냥아치다.
글을 쓸려고 로비에 앉으면 슬그머니 다가온다. 글을 잘 쓰고 있는지 검사하러 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내 글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럼 나는 오른손으로 글을 쓰고 왼손으로 고양이 등을 쓰다듬는다. 고양이는 기분이 좋은지 배를 보이며 슬 잠든다.
이 순간 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 그 어느 때보다 글이 잘 쓰였다. 문맥이 매끄럽게 쓰였고 재밌는 단어들이 쏙쏙 나왔다. 내가 써도 참 잘 썼네란 생각이 들 정도로.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글을 잘 쓰는 비결 중 하나가 고양이 일수도 있겠구나. (그의 문학을 설명할 땐 고양이가 빠질 수 없을 정도로 고양이 집사다)
문득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모시는 거지. 물론 글이 잘 써진다는 이유로 키우고 싶다는 건 아니다. 왜 갑자기 개보다 고양이가 좋아졌는지는 모르겠다. 이 사실을 우리 집 개 토리가 알면 큰일인데.